매니징도 엔지니어링이 가능할까?
안녕하세요. ABC Studio에서 ABC Platform 팀을 맡고 있는 송재욱입니다.
저희 팀에서는 '재생산 비용을 낮추는 행위'를 엔지니어링으로 정의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먼저 해결한 문제를 다른 사람이 다시 겪었을 때 먼저 적용한 방법으로 쉽게 해결했다면, 이는 엔지니어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문제에 또 골머리를 앓지 않고 본질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재생산 비용을 낮췄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소위 개발자들의 전유물로 여기던 엔지니어링을 바라보면 '기획 엔지니어링'이나 '디자인 엔지니어링'도 가능해지며, 더 나아가 리드가 수행하는 관계나 감정, 케어와 같은 업무 또한 '매니징 엔지니어링'으로 시스템화할 수 있는 영역이 될 수 있습니다. 멤버가 정말로 안녕한 것인지 파악하는 등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복잡한 상황들을 체계화해 재사용 가능한 프레임워크로 만들어 매번 같은 고민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매니징 엔지니어링'이라고 생각하며, P-Canvas는 이와 같은 시도의 결과물이자 팀을 이해하기 위한 엔지니어링 기법입니다.
참고로 이 글에서 소개하는 P-Canvas는 LINE+의 전사적인 제도가 아니라 ABC Platform 팀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매니징 기법입니다.
매니징의 어려움을 깨달은 배경
자율과 방임은 한끗 차이
ABC Platform 팀이 처음 구성되고 제가 리드를 맡았을 때 저는 팀의 정체성을 명확히 정의해 가시화하는 방식으로 팀이 존재해야 할 당위성을 팀 내외로 공유했습니다. 또한 리드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업무 프로세스를 단순화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 여기에 중점을 두고 리드 역할을 수행했으며, 팀의 지속 가능성은 멤버의 성장과 성과를 증명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판단했기에 자율성을 그 무엇보다 중요한 핵심 가치로 여겼습니다. 이와 같 은 고민과 팀 셋업 과정을 정리해 이 블로그에 포스팅하기도 했고요(참고: 플랫폼 팀의 1년, 일본 최대 규모의 배달 서비스에 안착하기까지).
저는 이와 같이 제가 생각하기에 팀이 잘 운영되기 위한 주요 역할을 잘 수행했기 때문에 '이제 멤버들이 스스로 성과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안심했는데요. 이는 위험한 생각이었습니다. 곧 팀원들의 불만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칫 저는 자율성을 중요시한다는 명목 하에 팀원을 방임할 뻔 했습니다.
1on1 미팅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1on1 미팅은 멤버 주도로 진행하도록 가이드하는데요. 현실에서는 그렇게 작동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바쁜 업무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제때 1on1 미팅을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미팅을 하더라도 대화 주제가 명확하지 않아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다 끝나는 경우도 있었으며, 멤버 주도가 아닌 리드 주도로 대화가 흐르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습니다. 때때로 미팅의 결론이 '열심히 잘 해보자'라는 추상적 격려로 귀결되면서 리드의 입장에서 좋은 시스템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드는 경우도 있었고요.
저는 1on1 미팅을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저희 팀의 특성에 맞게 시스템을 개선할 수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개발자가 버그를 패치하듯 매니징에도 저희 팀에 맞는 패치를 적용해 보자고 결심했고, 그 결과 고안해 낸 것이 바로 'P-Canvas'입니다.
P-Canvas 소개
P-Canvas는 개인의 성장과 현재 상태를 한 장의 캔버스에 담아 시각화하는 매니징 프레임워크입니다. 평가가 아닌 성장 기록에 초점을 맞춰, 리드와 멤버가 함께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5개월 단위로 매달 한 번씩 아래 양식을 멤버가 직접 채워 넣은 뒤 이를 기반으로 리드와 1on1 미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운영합니다(자세한 사항은 아래 'P-Canvas 설계'와 'P-Canvas 도입 및 운영 방식과 운영 중 지켜야 할 원칙' 섹션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P-Canvas의 양식은 크게 4가지 영역으로 구성됩니다.
- 왼쪽에 배치된 세 개의 좌표계는 멤버의 현재 위치와 성장 방향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소통의 적극성, 성장과 성과의 상호 관계와 방향, 안정 과제와 도전 과제에 대한 감정적 상태를 각각 2차원 평면에 표시합니다.
- 오른쪽에 배치된 척도형 지표들은 업무 비중과 그에 따른 참여도와 만족도, 동기 부여, 완전한 솔직함의 상태를 측정합니다.
- 왼쪽 아래에 위치한 헥사곤 스킬 차트는 P-Canvas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 중 하나입니다. 육각형의 위에 위치한 '커뮤니케이션'과 '플랫폼에서 일 잘하는 10가지'는 ABC Platform 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항목입니다. 중간에 위치한 '직무 전문성'과 '업무 완 결성'은 개인의 역량과 성과에 초점을 둔 항목입니다. 아래에 위치한 '지식의 일반화'와 '문화 기여도'는 ABC Platform 팀의 상위 조직인 ABC Studio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항목입니다. 팀과 개인, 상위 조직의 세 가지 관점에서 각각 중요하게 여기는 항목을 두 개씩 배치해서 개인의 강점과 개선점을 종합적으로 시각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아래에 위치한 텍스트 영역은 다른 지표에서 표현하지 못한 주제들, 개인의 자유로운 회고와 앞으로의 목표, 리드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 등을 작성할 수 있도록 마련돼 있습니다.
P-Canvas의 장점은 꾸준히 반복하며 변화량을 추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매월 같은 양식을 작성하면서 각 지표의 변화를 관찰하고 변화의 원인을 함께 탐색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점수 자체보다는 '왜 이 부분이 이렇게 변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대화가 중요한데요. 이 대화가 서로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P-Canvas 활용 예시: Allen의 변화 추적
P-Canvas를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P-Canvas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설정해 본 사례로, 가상의 Allen이라는 멤버의 5개월간의 변화를 추적한 P-Canvas입니다(P-Canvas 아래에 위치한 텍스트 항목들은 입력 자유도가 높고 상황별로 배경과 해석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기서는 제외하겠습니다).
이 P-Canvas와 함께 어떻게 멤버의 문제를 도출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는지 단계별로 살펴보겠습니다.
문제 도출: 1on1 미팅에서 데이터로 말문 열기
Allen의 데이터를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나타납니다. 1~2회차 때에는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보이다가 3회차에서 갑자기 업무 만족도와 자기 동기가 눈에 띄게 하락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수준이 떨어진 것도 눈에 띄며 동시에 완전한 솔직함 지표는 오히려 상승했다고 나타났습니다.
이렇듯 급격히 변하거나 특정 지표들이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은 리드가 주목해야 할 신호입니다. 이런 변화는 Allen이 업무 협업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높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솔직한 자세로 임했지만 안타깝게도 제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업무 만족도와 동기가 떨어진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이럴 때에는 P-Canvas 3회차 1on1 미팅에서 이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화의 물꼬를 터보는 것이 좋습니다.
- 리드: "Allen, 이번 달 P-Canvas를 보니까 눈에 띄는 패턴이 보이네요. 업무 만족도나 동기가 많이 떨어졌고,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했다고 나오는데요. 반대로 솔직함 점수는 올랐어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요."
- Allen: "아, 사실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이해 관계자들과의 협업에 곤란한 상황이 있습니다.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 배경과 이유, 과정, 충돌, 고민 등과 관련된 대화를 이어간 후) 그래서 이번에 P-Canvas에 그런 점들이 반영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위와 같이 시각화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화를 시작한 덕분에 Allen이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도록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숨어 있던 문제가 도출된 것이죠.
대응: 도출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감과 협력
P-Canvas는 문제를 발견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멤버의 문제에 충분히 공감한 뒤 원인을 파악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협력하는 데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P-Canvas를 기반으로 각 지표의 변화를 관찰해 업무 프로세스에 문제가 있던 것인지 아니면 조직의 R&R이 불명확했던 것인지 혹은 일하는 문화에 차이가 있었던 것인지 등 충돌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한 뒤 적절한 해결책을 도출하고 실행합니다. 예를 들어 일하는 문화에 차이가 있어 이해 관계자들과 충돌했다면 중간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잘 중재하고 조정해 줘야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적극적으로 상황에 개입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의 문제에는 대부분 정답이 없습니다. 이런 점이 리드로서 곤란한 점인데요. 이때 어떤 태도와 해결 방식을 취할지는 리드의 리더십 성향과 역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멤버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잘 설득하면서 한편으로는 서비스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안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추 적: 회복과 성장
P-Canvas를 도입해 리드가 기대하는 최고의 상황은 멤버가 회복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앞서 사례로 든 Allen의 경우 3회차에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공감한 덕분에 4회차에서는 함께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 리드: "Allen, 이번 달 P-Canvas는 많이 회복된 모습이네요! 뭔가 변화가 생겼나요?"
- Allen: "네, 도와주신 덕분에 이해 관계자들의 입장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동기부여가 되었어요."
물론 이번 사례와 같이 빠르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몇 달이고 숙제로 안고 계속 대화하며 추적해 끝내 회복과 성장의 길목으로 들어설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P-Canvas가 만든 변화
이 사례에서 P-Canvas가 한 역할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구분 | P-Canvas 도입 전 | P-Canvas 도입 후 |
---|---|---|
문제 인식 | 문제와 불만이 장기간 누적됨 | 정기적인 P-Canvas로 조기에 지표 변화 신호를 감지 |
대화 방식 |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대화(예: '열심히 해보자') | 데이터 기반의 구체적인 대화 |
원인 파악 |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어렵거나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림 | 데이터 변화량에 근거한 1on1 미팅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빠르게 탐색 |
대응 속도 | 문제가 심화된 후 지연 대응 | 회복을 위한 신속한 개입과 협력 |
결과 | 불만 장기화, 동기 저하, 성과 악화 | 회복 가속, 동기 강화, 성과 개선 |
- 조기 신호 감지: 눈에 띄는 데이터나 지표 변화 패턴을 통해 문제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예방적 관리가 가능합니다.
- 구체적 대화 시작: "어떻게 지내세요?" 대신에 "이 데이터와 패턴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궁금해요"와 같이 데이터에 기반해 대화가 보다 구체적으로 진행되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 해결책 공동 탐색: 멤버가 원하는 방향을 명확히 파악하고 함께 대응할 수 있습니다.
- 변화 추적: 회복과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무엇이 효과적이었는지 배울 수 있고, 그 과정을 추적 및 관찰할 수 있습니다.
만약 P-Canvas 없이 기존의 잘못된 1on1 미팅 방식을 고수했다면 Allen의 불만족은 더 오래 누적되며 더 큰 문제로 발전할 수도 있었습니다. 혹은 설령 문제를 파악했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체계적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P-Canvas를 사이에 두고 대화한 덕분에 '감정적 불만'과 '이해 충돌 지점'과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고, 함께 적절한 해결책을 함께 찾을 수 있었습니다.
P-Canvas 설계
이제 P-Canvas를 왜 이와 같은 형태와 구성으로 설계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설계 원리
P-Canvas를 설계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업무상 욕구를 균형있게 반영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결정하고 주도하고 싶어하고,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를 원하며,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는 안정감을 추구합니다. 이 세 가지 욕구가 P-Canvas의 각 영역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자율성은 업무 만족도와 자기 동기, 프로젝트 참여도 같은 영역에서 측정됩니다. 성장에 대한 욕구는 새로운 배움에 대한 갈증과 숙련도 변화, 학습 활동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관계에 대한 욕구는 동료 돕기와 소통 능력, 협업 기여도에서 나타납니다.
또 다른 중요한 설계 의도는 변화와 성장 과정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점수나 등급보다는 '지난달과 비교해서 어떻게 달라졌는가?',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들었는가?'에 더 관심을 갖도록 구성합니다. 이렇게 해야 멤버들이 현재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성장 가능성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표 분석
지표 유형 | 참고 예시 | 특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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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원 좌표계 | ![]() | 지표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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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 비교 좌표계 | ![]() | 지표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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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형 지표 | ![]() | 지표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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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폴리오 구성 | ![]() | 지표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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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사곤 스킬 | ![]() | 지표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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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 ![]() | 지표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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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화 캔버스로 진화
앞서 말씀드렸듯 P-Canvas는 5개월 단위로 운영되며, 첫 번째 5개월 사이클에서는 모든 멤버에게 동일한 표준 지표로 설정한 P-Canvas를 제공합니다. 같은 기준으로 작성하면 팀 전체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고, 점차 각 팀원의 차이점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 번 진행하면 학습 효과를 통해 개인별 상황과 성향에 따라 더 의미있는 지표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두 번째 사이클에서는 각 멤버별로 지표를 개인화합니다. 아래는 두 번째 사이클에서 개인화 항목을 추가한 예시입니다.
저희 팀은 현재 각 멤버의 개별 상황에 맞게 지표를 개인화해서 맞춤형 P-Canvas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커뮤니케이션의 밀도를 높이길 바라는 멤버에게는 소통 관련 지표를 더 세분화해 추가하고, 기술적 성장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멤버에게는 학습과 역량 개발 관련 지표를 강화 반영했습니다. 개인의 성장을 넘어 동료의 성장을 이끄는 리더십 항목으로써 동료 돕기나 동료의 업무 가치 향상 기여도 같은 지표를 추가하기도 합니다. 또한 지표는 추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삭제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꾸준히 높은 수준의 신뢰도를 달성한 지표는 과감히 졸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