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최근 몇 년 사이 인공 지능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언어 모델은 인간 수준의 언어 생성 능력을 갖췄고, 멀티모달 모델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넘나들며 추론하며, 특정 분야에서는 전문가에 필적하는 성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도화된 AI가 우리의 일상과 사회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면서 '단순히 정확도가 높고 빠른 AI만으로 충분할까'라는 의문이 생기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의사결정,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 설계, 책임이 불분명한 자동화는 오히려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람 중심의 AI, 다시 말해 인간의 능력을 강화하고, 인간과 협력하며, 인간의 책임과 윤리를 존중하도록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이탈리아 칼리아리에서 열린 IUI(Intelligent User Interfaces) 2025 학회는 이러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IUI는 인공 지능과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이하 HCI)의 접점에 선 학회로, 단순한 성능 경쟁을 넘어 인간을 중심에 둔 인터페이스와 시스템 설계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올해 학회에서는 여러 발표자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AI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를 다뤘고, 이를 통해 학계와 산업 전반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이번 학회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세션에 참여해 여러 연구자들의 문제 의식과 해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은 발표는 알브레히트 슈미트(Albrecht Schmidt)와 베라 리아오(Q. Vera Liao), 제리 앨런 페일스(Jerry Alan Fails)의 세션이었습니다. 이들은 AI 활용과 관련해 중요한 화두들을 던졌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제가 각 발표를 들으며 얻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발표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고 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Reality Design: Shaping Experiences Beyond Interfaces through Human-Centered AI, Albrecht Schmidt
첫 번째로 소개할 발표는 알브레히트 슈미트 교수의 키노트였습니다. 슈미트 교수는 오랫동안 인간 중심 인터랙션과 증강 기술을 연구해 온 학자로, 이번 발표에서는 '리얼리티 디자인(Reality Design)'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인간과 AI의 관계를 재조명했습니다.

슈미트 교수의 주장은 명료했습니다. 지금까지의 HCI 연구가 주로 화면과 장치라는 좁은 틀 안에서 인터페이스를 다뤘다면, 이제는 현실 자체를 설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AI와 센서, 웨어러블 기기, 확장 현실(XR) 등의 기술이 일상에 통합되면서 인간의 지각과 인지, 기억 자체가 기술과 연결돼 인간의 능력이 증강(augmented)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슈미트 교수는 이를 '리얼리티 디자인'이라고 명명하면서 인간 경험 전체를 디자인 대상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발표에서는 인간의 능력이 증강된 구체적인 사례들도 소개됐습니다. 예를 들어 기억 확장 연구에서는 개인이 경험한 사건이나 대화를 AI가 자동으로 기록해 놓았다가 필요할 때 불러와 재구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실험한 사례가 소개됐습니다. 상담이나 교육, 연구 등의 분야에서 인간이 놓치기 쉬운 부분을 보완하고 관련 내용을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감각 증강 사례에서는 현실의 특정 동작을 슬로 모션으로 재현해 관찰력을 높이거 나, 특정 음성을 선택적으로 청취할 수 있도록 해 사용자의 지각 능력을 강화하는 기술이 소개됐습니다. 또한 AI가 인간의 인지 능력 수준에 맞춰 작업 난이도를 조정해 주는 방식을 보여주기 위한 레고 블록 실험도 시연됐습니다. 이 실험은 협력적 지능이 어떻게 설계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줬습니다.
슈미트 교수는 발표에서 단순히 기술로 어떤 것이 가능한지 나열하며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술이 인간의 사고와 학습 의지를 약화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화된 기억 확장 장치가 지나치게 발달하면 인간은 스스로 기억하거나 학습하려는 동기를 잃을 수 있습니다. 슈미트 교수는 고대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가 글쓰기의 발명을 비판하면서 말했던 “글쓰기는 망각을 낳는다”라는 경구를 인용하며,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인지 능력을 대체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발표 마지막에는 'We shape our reality; thereafter it shapes us'라는 문장이 공유됐습니다. 이 문장은 기술과 인간의 관계가 일방향이 아니라 순환적이라는 점을 환기시켰습니다.
저를 포함한 청중들은 실험 사례에 흥미를 느꼈고, 발표에서 제기된 철학적 질문에 공감했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만들까'가 아니라, '그 기술이 인간을 어떤 존재로 만들 것인가'라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굉장히 의미 있는 세션이었습니다.
Human-Centered AI Transparency: Bridging the Sociotechnical Gap, Q. Vera Liao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세션은 베라 리아오